[헬스인뉴스]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던 불편함이 사실 질환의 시작일 수 있다. ‘골반장기탈출증’은 자궁, 방광, 직장 같은 장기가 제자리에서 아래로 밀려 내려오며 생기는 문제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골반 속 지지 구조가 무너지는 것이다.

과거엔 주로 출산을 많이 한 여성이나 고령층에게서 나타났지만, 최근엔 40~50대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필라테스나 복근 운동처럼 복부에 압력이 집중되는 활동이 영향을 주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젊은 층에서도 발병이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골반장기탈출증 환자는 최근 4년 새 약 17% 증가했다. 단순 노화 문제가 아닌 ‘생활 패턴의 질병’이 된 셈이다.

골반장기탈출증, 더 이상 나이 많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 제공=클립아트코리아)
골반장기탈출증, 더 이상 나이 많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 제공=클립아트코리아)
“누르는 듯한 불편감”... 몸이 보내는 미묘한 경고

이 질환은 슬금슬금 다가온다. 처음엔 ‘조금 묵직하다’, ‘화장실을 자주 간다’, ‘잔변감이 남는다’ 정도로 시작된다. 대부분 스트레스나 일시적인 문제로 여기고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질 내부에 무언가 만져지거나, 앉거나 걸을 때 불쾌감이 생긴다. 심한 경우 장기가 질 밖으로 돌출되기도 한다. 이물감이나 압박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필요하다.

신정호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초기엔 뚜렷한 통증이 없어서 진단이 늦는 경우가 많다”며 “방치하면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위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보다 중요한 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습관

증상이 심해질 경우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치료는 질을 엉치뼈(천골)에 고정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로봇수술이 도입되면서 정밀도가 높아지고 회복도 빨라졌다.

하지만 수술보다 더 중요한 건 ‘재발 방지’다. 골반 근육의 약화 원인이 그대로라면, 다시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선 수술 후 재발률이 40%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신 교수는 “수술 후 3~6개월간은 복압을 높이는 행동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며 “변비 예방, 골반저 근육 운동, 자세 교정 같은 생활 습관이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신정호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신정호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몸에 좋은 운동도, 지나치면 ‘독’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질환을 부를 수도 있다. 복부 중심의 고강도 운동, 필라테스, 반복적인 복근 강화 루틴이 골반 내부 압력을 높이고 장기를 아래로 밀어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신 교수는 “젊은 여성들의 운동 습관 변화가 발병 연령대를 낮추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며 “특히 복압을 과도하게 높이는 운동을 지속하는 경우, 무증상 단계에서도 골반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방의 핵심은 ‘복압 관리’다. 과한 복근 운동, 체중 증가, 무리한 자세, 변비 같은 일상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증상을 유발한다.

조금 더 가볍게 걷고, 자세를 바로잡고, 무거운 걸 들 땐 호흡을 조절하는 습관부터 시작해보자. 골반 건강은 대단한 노력보다 ‘작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

임혜정 헬스인뉴스 기자 press@healthinnews.kr
저작권자 © 헬스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