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건 인제대 일산백병원 신경과 교수팀은 2018~2020년 건강보험 진료 데이터에서 65세 이상 치매 환자 약 51만 명의 복약 기록을 분석했다. 국내에서 치매 약 복용 실태를 이처럼 대규모로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효과 안 보이니 ‘초반에 포기’
치매약은 병을 낫게 하진 못하지만, 증상의 진행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복용을 멈추면 인지 저하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치료 시작 후 1년 안에 약을 중단한 비율은 전체의 44%였다. 심지어 3개월 이내에 끊은 경우도 30%에 달했다.
이영건 교수는 “초기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환자나 보호자가 약을 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이후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복약 지속 여부엔 진료를 누가 했는지가 큰 변수였다. 신경과나 정신과 등 전문의 진료를 받은 환자는 약을 더 오래 복용한 반면, 비전문의 진료 후 시작한 환자는 복약 중단 위험이 1.6배 높았다.
병원 규모도 영향을 미쳤다. 상급종합병원보다 1·2차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한 환자가 중단할 확률이 두 배 이상 높았다. 지역별로는 지방 거주 환자가 서울 환자보다 중단 위험이 최대 75% 더 높았다.
다만 주목할 점은 ‘병원 수’보다 지역 내 전문의 수가 복약 유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의료 접근성보다, 지속적인 전문 상담의 유무가 치료 지속성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치매약은 ‘먹다 말면 효과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복약의 성패는 치료 초기 3개월 안에 갈린다. 이 시기를 넘기면, 이후 복용 유지율이 크게 높아진다.
따라서 약을 꾸준히 복용하도록 돕는 것은 환자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전문의의 충분한 설명, 보호자의 동기부여, 사회적 치료 인프라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영건 교수는 “치매 치료는 장기전이다. 단기 성과에 좌우되지 않도록 의료진과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전문의 진료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대한의학회지(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최근호에 실렸다.
임혜정 헬스인뉴스 기자 press@healthinnews.kr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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