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인뉴스] 심장은 매일 10만 번 넘게 뛴다. 하지만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그 안에서 조용히 병이 자라는 경우가 있다. 바로 비후성 심근병증이다.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서 혈류가 막히고 부정맥이 생기며, 심한 경우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미미하거나 전혀 없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어렵다. 일부 환자는 실신이나 급사 이후에야 병을 알게 되기도 한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고혈압, 대동맥판 협착증 등 다른 심장 질환처럼 외부 요인으로 인한 근육 두꺼워짐과는 다르다. 뚜렷한 원인 없이 심근이 과도하게 비대해지는 것이 특징이며, 유전적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가족 중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심장사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면, 비후성 심근병증을 의심해야 한다.

두꺼워진 심근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을 방해해 심장이 충분히 혈액을 내보내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가슴 두근거림, 호흡 곤란, 피로감, 어지럼증, 흉통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증상들이 다른 심장 질환이나 단순 피로로 오인되기 쉬워, 조기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증상 없이 심근이 두꺼워져 돌연사를 유발할 수 있어, 가족력 있는 경우 정기 검진이 필수다. (사진 제공=클립아트코리아)
비후성 심근병증은 증상 없이 심근이 두꺼워져 돌연사를 유발할 수 있어, 가족력 있는 경우 정기 검진이 필수다. (사진 제공=클립아트코리아)
조기 진단의 핵심은 영상검사... 조직변성 동반 시 위험도 높아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초음파로 심벽의 두께와 수축 기능을 평가하고, 심장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미세한 섬유화나 지방 변성을 확인한다. 영상검사에서 심근이 두껍고 섬유화가 동반된 경우, 돌연사 위험이 더 크다. 하지만 영상상 명확한 이상이 없어도 질환이 존재할 수 있어, 전문의의 종합적인 판단이 필수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심부전이나 부정맥 같은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가족력이나 실신, 흉통 등의 증상이 있다면 조기에 전문검사를 받아야 한다. 김용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비후성 심근병증은 초기에는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지만, 심장이 갑자기 멈출 수도 있는 위험한 질환”이라며 “정기적인 심장초음파 검사가 돌연사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치료의 목적은 증상 완화와 합병증 예방이다. 초기에는 베타차단제나 칼슘통로차단제 등 약물로 심박수를 조절하고 심근의 이완을 돕는다. 약물로 조절이 어렵다면, 비후된 심근을 부분 절제하는 수술이나, 심근 일부에 알코올을 주입해 위축시키는 시술(중격절제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돌연사 위험이 높은 환자는 이식형 제세동기(ICD)를 삽입해 응급상황에 대비한다.

김용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김용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꾸준한 관리와 생활 습관 조절이 장기 예후 좌우

비후성 심근병증은 꾸준한 관리만으로도 비교적 안정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이나 근력운동은 심장 부담을 높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 대신 걷기, 요가, 가벼운 자전거 타기 등 저강도 운동은 도움이 된다. 단, 운동 강도가 심박수의 최대치 7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계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또한 심장에 부담을 주는 카페인, 고염식, 과도한 음주를 줄이고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부정맥이나 협심증 같은 합병증이 동반될 경우, 주기적인 심전도 검사와 약물 복용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김용현 교수는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는 가족력과 실신 경험 여부에 따라 위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기 검진과 맞춤 치료가 필수”라며 “예기치 못한 돌연사에 대비해 가족들도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제세동기(AED) 사용법을 숙지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임혜정 헬스인뉴스 기자 press@healthinnews.kr
저작권자 © 헬스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