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대 샌드위치 백작인 존 몬태규 (John Montagu 1718~1792년)는 영국 해군 제독으로 해양 탐험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했다. 이에 쿡 선장이 샌드위치 제도로 명명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섬을 하와이로 불렀다. 먼 옛날에 바다를 건너온 그들의 선조가 최초로 상륙한 전설의 지명인 하와이키에서 연유했다.
하와이 제도의 이름이 될 수도 있던 샌드위치 백작 작위는 켄트주의 한 지명에서 유래했다. 에드워드 몬태규가 1660년에 초대 백작의 작위를 받은 후 후손에게 세습됐다. 존 몬태규가 태어난지 4년 만에 아버지가 숨졌고, 어머니는 곧 재혼을 했다. 이후 어머니와는 거의 접촉이 없었다. 존 몬태규는 11세에 할아버지로부터 백작 작위를 물려받고, 귀족학교인 이튼 칼리지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리스, 터키, 이집트 등을 여행해 견문을 넓힌 그는 귀국 후 상원의원, 육군 대령이 되었다. 28세 때는 전권대사로 참석한 브레다 회의에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강화조약 체결에 큰 역할을 했다. 30세에 해군경, 35세에 국무대신에 임명되었다. 이후 해군장관, 우편국장, 국무장관을 두루 거쳤다.
해군 장관을 3차례 역임한 존 몬태규 샌드위치 백작은 탐험가인 제임스 쿡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쿡 선장의 탐험선 4척의 구입 비용을 그가 장관인 해군에서 지원해줬다. 그의 영향력은 하와이인 샌드위치 제도,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 알래스카의 몬태규 섬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영국 의회와 국민으로부터 패전의 책임을 추궁당했다. 공직에서 물러났고, 가짜 뉴스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것이 패스트푸드 ‘샌드위치 사건’이다. 소문은 존 몬태규가 친구들과 카드 도박에 푹 빠졌다는 것이었다. 식사도 잊은 채 카드 도박에 몰입한 그는 시종에게 고기 몇 조각과 빵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빵 사이에 고기를 넣은 뒤 한 손으로 음식을 먹고, 한 손으로 카드를 쳤다는 것이다. 이른바 샌드위치 탄생 배경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도박이 아닌 일에 몰두해 간편식을 찾다가 만들어진 음식이 샌드위치라는 게 주류설이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그는 간식을 먹곤 했다. 버터를 바른 빵에 닭고기를 얹어서 간편하게 먹었다. 야식 경험이 많은 그는 빵 위에 미끄러지는 닭고기를 겹치게 얹어 먹는 스킬을 갖게 됐다. 이것이 주위에 전파된 게 샌드위치라는 게 정설이다.
물론 존 몬태규 이전의 로마시대, 러시아 등 여러 사회에서 빵에 육류, 야채를 싼 음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샌드위치 원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나올 수 있다.
샌드위치 등 패스트푸드는 일반적으로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으로 인식된다. 패스트푸드 섭취 빈도가 높으면 비만 위험이 높아진다. 요즘에는 비만과 성인병 위험이 적은 수제 샌드위치도 많다. 저열량, 저염, 저당의 두부 샌드위치나 탄수화물이 많은 밀 대신 양상추로 만든 다이어트 샌드위치 등이다. 패스트푸는 간편성으로 많은 사람이 즐긴다. 그러나 건강측면에서는 잦은 섭취보다는 가끔씩 먹는 게 바람직하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하수지 헬스인뉴스 기자 press@healthin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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