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의대 열대의학교실 김형표 교수와 연세의생명연구원 주정식 조교 연구팀은 세포 스트레스 반응의 핵심 조절 단백질인 ATF4와 CHOP이 유전자 조절 부위인 '인핸서'를 활성화하고, 인핸서와 유전자 사이의 입체적 연결을 형성해 세포의 운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핵산연구(Nucleic Acids Research, IF 15.0)'에 게재됐다.
우리 몸의 세포는 영양 부족, 염증, 독성 물질 등 다양한 원인으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들고 정리하는 소포체에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접히지 않은 단백질이 쌓이는 '소포체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세포는 이런 상황에서 먼저 손상된 기능을 회복하고 살아남기 위한 방어 체계를 가동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오래 지속되면 회복을 포기하고 스스로 죽는 과정을 선택한다. 이런 반응은 암, 당뇨병, 퇴행성 뇌질환, 간질환 등 다양한 질환의 발생과 진행에 깊이 연관돼 있다.

그동안 소포체 스트레스가 발생했을 때 어떤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다. 그러나 수많은 유전자 가운데 어떤 유전자가 세포 생존을 돕고 어떤 유전자가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지, 세포가 서로 다른 운명을 선택하도록 유전자들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유전자 발현만 살펴보는 기존 접근을 넘어, 유전자 조절 부위의 활성, 스트레스 반응 단백질의 결합, 핵 안에서 형성되는 유전자와 조절 부위 사이의 3차원 연결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인간 세포에 소포체 스트레스를 유도한 뒤 유전자 발현과 유전체 구조 변화를 확인한 결과, 특정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인핸서가 활성화되고 인핸서와 유전자가 서로 가까이 연결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인핸서는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스위치와 같은 부위로, DNA상에서는 유전자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핵 안에서 DNA가 접히면서 해당 유전자와 만나면 유전자가 더 강하게 작동하도록 돕는다.
연구팀은 세포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여러 단백질의 기능도 비교했다. 그 결과 ATF4 단백질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유전자 조절 스위치를 켜고, 스위치와 유전자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중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TF4가 제거된 세포에서는 스트레스에 반응해 활성화돼야 할 많은 조절 부위와 유전자 사이의 연결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또 다른 단백질인 CHOP은 ATF4가 만드는 반응 가운데 일부를 선택적으로 조절했다. ATF4가 세포의 전반적인 스트레스 대응 체계를 가동한다면, CHOP은 그중에서도 세포 사멸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더 강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반면 아미노산을 세포 안으로 운반하는 등 세포가 스트레스를 견디고 살아남는 데 필요한 일부 유전자들은 CHOP이 없어도 ATF4에 의해 작동했다. 이를 통해 ATF4가 유도하는 스트레스 반응이 CHOP과의 협력 여부에 따라 생존을 위한 적응 반응과 세포 사멸 반응으로 구분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절 스위치를 직접 억제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세포핵 안에서 유전자와 조절 스위치가 실제로 얼마나 가까워지는지를 영상으로 측정해, 유전자와 조절 스위치의 입체적인 연결이 실제 유전자 작동에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단순히 유전자를 켜고 끄는 것이 아니라, 세포핵 안에서 유전자와 조절 스위치의 입체적 연결을 바꿔 생존과 사멸에 필요한 유전자 프로그램을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형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가 같은 스트레스 신호를 받더라도 어떻게 서로 다른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유전체의 입체 구조 관점에서 설명한 연구"라며 "향후 세포를 보호해야 하는 질환에서는 생존 반응을 강화하고, 반대로 암과 같이 제거해야 하는 세포에서는 사멸 반응을 촉진하는 치료 전략 개발의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중견연구 및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SCL 교내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송소라 헬스인뉴스 기자 press@healthinnews.kr
송소라 기자
press@healthinnews.kr


